[불교신문]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계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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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음식 템플스테이] 용인 법륜사
법륜사 사찰음식체험관에서 열린 템플스테이. 공무원들이 점심을 손수 해먹으며 ‘힐링’했다.
육식동물은 포악하고 싱겁게 먹는 사람이 차분하다. 음식이 인격을 만든다는 게 불교의 세계관이다. 어떤 남성이 부처님을 찾아와 하소연했다. 시종일관 아내를 욕하고 세상을 욕하고 불운을 욕했는데 부처님은 단 한 마디 질문으로 그의 폭주를 막아 세웠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뒤틀린 마음은 알고 보면 잘못된 식습관에서 비롯된다는 가르침이다. 착한 음식을 먹어야 착한 인간이 되는 법이다. 남의 생명을 빼앗아서 얻은 음식이나 인위적으로 잔뜩 가공한 음식을 착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스님들은 채식을 하고 직접 재배한 재료에 직접 담근 장을 섞어서 조금만 먹는다. 얼굴이 하나같이 맑고 동안인데 병원 가서 만든 동안이 아니어서 심성도 순수하다. 사람의 성격이 천차만별이듯이 음식에는 각자의 특징과 사연이 있다. 고기란 누군가의 고통이요 원한이다. 고기를 좋아하면 삶이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등식이 성립된다.
음식이 인격을 좌우한다
독특한 구조를 지닌 칠불사 아자방(亞字房)은 온돌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스님들이 정진하는 선방인데 말 그대로 ‘亞(버금 아)’ 자 모양이다. 4곳의 귀퉁이를 바닥 면보다 한 단 높게 조성했다. 한 번 불을 때면 온기가 100일을 간다는 방이다. 그만큼 정진력이 높아져 견성(見性)에 성공하는 수행자가 많다는 전언이다.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서 일반인들도 정치인들도 이른바 ‘기(氣) 받으러’ 찾는다. 으레 선거를 앞뒀거나 당락이 결정됐을 때 경남 하동의 산골짜기까지 내려온다. 낙선했다 해도 세상 끝나는 것 아니고 계속 살기는 살아야 하니까 힘을 낸다. 경기도 용인 문수산 자락에 있는 비구니 스님들의 도량인 법륜사(주지 현암스님)는 대웅전이 ‘아자방’이다. 불사를 일으키고 완수한 상륜스님(2007년 입적)이 이렇게 설계했다. 부처님 법이 기운차게 내달려 온 누리를 밝혔으면 하는 원력이 담겼다. 기와는 청기와인데 희망과 환희를 상징한다.
예로부터 음식을 하는 쪽은 주로 여성이었고 절집에서도 비구니 스님들의 손맛이 뛰어나다. 법륜사는 작년 9월에 사찰음식체험관을 개관했다. 친환경 사찰음식을 보급하고 대중화하기 위한 곳이다. 연면적 150평 규모로 1층에는 사찰음식 체험 실습실, 2층에는 사찰음식 시연장이 들어섰다. 템플스테이도 사찰음식이 주요 소재다. 사찰음식 비법을 마련해두고 특례시로 승격될 만큼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용인의 시민들을 맞이한다. 시청과 복지관 등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머리 식히러들 곧잘 들른다. 11월7일에도 용인시청 공무원 20여 명이 방문해 점심 한 끼 해먹고 갔다. 민원폭탄에 시달리고 기본적으로 박봉에 은근히 많은 야근의 악조건을 위로하기 위한 자리다. 오전 10시 열 개 이상의 조리대가 차려진 실습실에 옹기종기 앉았다. 신축이어서 내부가 아주 깔끔하다. 가지런히 놓인 각종 식재료와 양념은 한없이 정갈하여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된장 넣은 뒤에 딱 '5분만'
무슨 일을 하고 어느 지위에 있든, 죽을 때까지 밥을 먹고 밥을 구하다가 끝나는 것이 인생이다. 도덕입네 이념입네 말은 많아도 결국은 밥벌이가 삶의 근본이어서, 밥을 먹으려면 끊임없이 빌고 견디고 욕먹고 해야 한다. 스님들에겐 밥을 먹는 일조차 수행이다.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채식을 하고 절제를 익히기 위해 소식을 한다. 먼저 법륜사 문화국장 덕진스님의 강의부터 들었다. 불교에서 식사를 뜻하는 공양(供養)이란 단어는 “함께 좋은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해야지 ‘삼식이’를 탓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하면 그 독기가 고스란히 음식에 밴다. 오신채(五辛菜)를 금한 까닭도 성질이 세서 화를 돋우기 때문이다. 입에 넣은 음식은 몸에도 쌓이지만 마음에도 쌓인다. 죽임당한 억울함을 섭취하면 응당 섭취한 자아를 통해 그 울분이 발현된다. 그렇다고 고기를 아예 끊을 수는 없는데, 부처님 스스로가 그리 가르쳤다. 아파서 기력이 없을 때나 본인이 직접 죽이지 않은 동물에 대해선 육식을 허락했다. 결국 고기를 먹긴 먹어야 하고, 괴로움이란 살아있다면 어쩔 수 없는 ‘상수(常數)’인 셈이다.
여름이 길었고 어렵게 가을이 왔는데, 냅다 겨울로 내달리려 움찔거리는 날씨다. 이날 해먹은 메뉴는 도라지유자청, 우엉조림, 된장찌개, 배추전이다. 제철 음식들이고 덕진스님은 “제철 음식이 보약이어서 제철 음식을 챙겨먹으면 한약과 비타민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유자는 감기 예방에 좋고, 기관지에 좋은 도라지는 백약(百藥)의 뿌리여서 준비했다. 배추는 날것 말고 살짝이라도 데쳐야 영양분이 최고조로 일어나고, 된장을 넣은 다음엔 딱 5분만 끓여야 된장찌개가 가장 맛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다들 진지하고 재미있게 실습에 임했다. 손수 일궈낸 건강식이 각자의 앞에 놓였다. 개인적으론 달콤 바삭한 우엉조림이 ‘1픽.’ 조리대가 그대로 밥상이 되어 잔치판이 벌어졌다. “내가 했지만 너무 맛있다” “삼시 세끼 쌉가능”이란 소감이 터져 나왔다. 식사하고 나서는 '싱잉볼' 명상을 짧게 체험하고 귀가했다. 밥심보다 미더운 힘도 없고, 언제 어떻게 먹더라도 밥을 먹으면 시름이 사라진다. 음식이 곧 인격이며 제철 음식도 교훈을 준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계절이 있다. 꽃피는 시기는 모두 다르니 추위 속에서도 따뜻할 수 있다.
‘Dream 드림’(1박2일)
: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정오까지. 소리 명상, 108배 명상, 자비 명상, 저녁예불, 문수산 또는 농촌테마파크 산책, 차 명상과 마음 나누기 등.
찾아가는 길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농촌파크로 126
용인터미널에서 16번 버스 탑승 → 법륜사 정류장 하차
문의: (031)332-5703
예약: www.templestay.com
[불교신문 제3846호 / 2024년 11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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