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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일보] [경기도 전통사찰] 아파트 17층 높이 황급빛 은행… 천년의 세월 앞에 숙연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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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댓글 0건 조회 71회 작성일 24-11-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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⑯양평 용문사

환상적 자태의 용문사 천년 은행나무. 사진=이재웅
환상적 자태의 용문사 천년 은행나무. 사진=이재웅

◇천년 역사 지켜온 파수꾼 은행나무=해마다 가을이 되면 단풍 명소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곳이 있다. 바로 양평 용문사다. 이곳이 명소로 이름난 데는 사찰에 자리한 천년 은행나무의 존재가 크다. 거대하게 펼쳐진 나뭇가지에 노랗게 흐드러진 은행잎이 시야를 가득 채워 보는 이의 눈을 호강시킨다.

용문사의 역사는 깊고도 신비롭다. 신라 신덕왕 2년(913)에 대경(大境) 스님이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927~935)이 직접 행차해 세웠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 곳 은행나무는 사찰의 천년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파수꾼과 같다.

용문사 사천왕문과 은행나무. 사진=김지영
용문사 사천왕문과 은행나무. 사진=김지영

1971년에 국민관광단지로 지정된 용문사 일대는 서울과 경기 지역 주민들에게 50년 넘게 가까운 휴식처로 사랑받아 왔다. 맑은 계곡물과 함께 정원, 벽화마을, 농업박물관, 극장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어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봄에는 꽃놀이, 여름에는 피서, 가을에는 단풍놀이를 즐기러 많은 이들이 찾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주문을 지나 15분쯤 숲길을 걸으면 사천왕문이 나타난다. 이 곳에서부터 사천왕문 지붕 너머로 웅장한 은행나무의 자태가 드러난다. 높이 38.8m, 둘레 11.0m에 이르는 은행나무는 아파트 17층 높이에 견주며, 가까이 다가갈수록 위엄찬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은 이렇게 큰 나무는 처음 본다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실로 우리나라에 가장 큰 나무로 알려져 있다.

나무의 나이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1천 년이니, 1천500년이니 달리 말한다. 그런데 최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라이다(LiDAR) 기술을 이용하여 나무의 생장 정보를 토대로 1천18살이란 나이가 추정됐다. 천 년을 넘게 살면서 매년 노란 단풍을 풍성하게 피워내는 귀한 생명력이 경이롭다. 키가 워낙 크다 보니 벼락을 맞지 않게 하려고 근처에 은행나무보다 높은 피뢰탑을 만들어 놓았다.

나무에 얽힌 전설도 재미있다. 신라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았던 곳에 나무가 자라났다는 이야기와,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고 금강산으로 가던 중 심었다는 전설이 있다. 고종이 승하할 때 나무가지가 크게 부러졌고,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소리를 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일본군이 사찰을 불태우고, 한국전쟁을 치를 때에도 나무는 화마를 입지 않아 신령스럽고 영험한 기운을 가진 나무로 여겨지고 있다.

용문사 대웅전 단청. 사진=김지영
용문사 대웅전 단청. 사진=김지영

◇호국의 역사 기억하는 용문사=용문사는 매년 음력 3월 3일에 천년은행나무대제를 연다. 용문사에서 출가해 이곳에서 수행했던 운암 김성숙 선생(태허스님)은 봉선사와 용문사를 항일운동의 본거지로 삼았는데, 일본군에 발각돼 많은 전각이 불태워지고,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겪었다. 천년은행나무대제에서는 태허스님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낸다. 호국사찰로서 용문사의 역사를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전통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용문사는 고려 우왕 4년(1378)에 지천대사가 개풍(현재 개성)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했고, 조선 태조 4년(1395)에 조안화상이 중창했다. 세종 29년(1447)에는 수양대군이 어머니인 소헌왕후를 위해 대웅보전을 세웠고, 세조 3년(1457)에 다시 한번 중수했다고 전해진다. 성종 11년(1480) 처안스님, 고종 30년(1893) 봉성대사가 연이어 중창하며 사세를 이어갔으나, 순종원년(1908)에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된 것이 일본군에 발각되면서 대부분 전각이 불에 탄 아픈 역사도 갖고 있다.

이후 취운스님이 1909년에 폐허가 된 절집을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1939년에 이르러 태욱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칠성각, 요사를 지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날 일주문, 사천왕문, 대웅전, 관음전, 삼성각, 지장전 등을 갖춘 제법 큰 사찰이 됐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판각한 대웅전 편액. 사진=김지영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판각한 대웅전 편액. 사진=김지영

◇단청과 단풍이 어우러진 한 폭 풍경화=대웅전은 편액 글씨가 아주 멋스럽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봉은사 대웅전 글씨를 본떠 판각한 것이라 한다. 단청에 붉은 색조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전체적으로 푸른 빛을 띠는데, 지붕 너머로 펼쳐지는 노랗고 붉은 단풍과 색감이 잘 어우러져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불은 보통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두는데, 이곳은 특이하게 아미타불의 협시인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을 두었다. 불단은 금과 단청으로 화려하게 치장했고, 다양한 모습의 앙증맞은 동자승을 여럿 배치해 천진한 불심이 절로 나오는 것 같다.

대웅전 왼편으로 지장전이 위치한다. 지장전은 창호에 색을 칠하지 않아 자연스럽고 수수한 멋을 풍긴다.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청기와를 지붕에 올려 고상한 아름다움을 더했다. 법당 안에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의 성불을 돕고, 모든 업을 소멸시킨다는 지장보살을 모셨다.

용문사 대웅전 내부의 석가모니불,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 사진=김지영
용문사 대웅전 내부의 석가모니불,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 사진=김지영

용문사에서 은행나무 다음으로 유명한 것은 아마도 팔각 관음전의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일 것이다. 고려후기에 크게 유행했던 금동보살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상으로, 14세기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살이 많은 네모진 얼굴과 사실적인 이목구비, 화려한 장식이 특징이다. 11월 말까지 불교중앙박물관 특별전을 위해 잠시 자리를 떠나 지금은 볼 수 없지만 12월이면 돌아올테니 관음보살상을 보고 싶다면 겨울에 방문해도 좋을 것 같다.

용문사 관음전. 사진=김지영
용문사 관음전. 사진=김지영

◇사계절 언제나 깊고 오랜 행복 주는 곳=시간 여유가 있다면 용문사에서 하룻밤 지내보길 추천한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잘 마련돼 있고, 전통건축으로 지어진 방사가 무척 쾌적하고 아늑하다.

주말 체험형 스테이에서는 예불, 대종 체험, 108배, 단주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이 포함돼 활력을 채울 수 있고, 평일 휴식형 스테이에서는 일출감상, 스님과의 차담, 캠프파이어가 있어 유유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등산을 좋아한다면 용문산 가섭봉(1천157m)에 올라 장대하게 펼쳐진 암릉과 고원 경관을 만끽할 수도 있다.

천년 역사의 깊이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품은 양평 용문사는, 가을뿐 아니라 사계절 언제 찾아도 좋을, 깊고 오랜 행복을 주는 곳이다.

김지영 헤리티지포올 대표